종종 '우리 애는 너무 겁이 많은데, 어떡하지요?'하는 엄마들을 참 많이 만납니다. 비둘기를 비롯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서부터 높은 곳, 자동차, 엘리베이터, 낯선 아저씨 혹은 그림책에서 봤던 괴물을 겁내기도 합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 '엄마, 나는 이거 잘 못 할 거 같아'처럼 주어진 과제를 해보지도 않고, 잘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나이를 좀 더 먹은 초등학생들 같은 경우는 엄마 아빠의 카드 명세서를 들이대면서 '이렇게 돈을 많이 쓰다가 우리 집이 망하면 어쩌려고 그래?'라거나,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서 땅이 물에 잠기면 어쩌나, 핵전쟁이 터져서 인류가 멸망하면 어쩌나'처럼 아이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만나지 않게 하고, 괴물이 나오는 그림책을 보여주지 않고, 엄마 아빠가 카드를 조금만 쓰거나, 핵전쟁이나 지구 온난화 관련된 뉴스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였어도, 어떤 아이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어떤 아이들은 두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유독 왜 우리 아이만 이러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는 '사내자식이...'하는 말들은 아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줄이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정상적으로 느껴야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아이들은 불안감과 두려움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데,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수치심과 화나는 감정까지 넘겨주게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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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Gulim">◇ '위험회피 성향' 때문
그렇다면, 왜 무서움을 느끼게 될까요? 또, 아이들이 느끼는 두려움들은 왜 나이를 먹으면서 사라지기도 하는 걸까요? 두려움을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위협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질을 강하게 타고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기질을 '위험회피(Harm Avoidance) 성향'이라고 부르는데, 부모 중 한 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 낯선 환경, 변화에 대한 거부감
위험회피 경향이 강한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만한 요소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잘 찾아내고, 대체로 새로운 사람이나 낯선 상황을 이 경향이 낮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변화를 매우 싫어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낯선 것은 곧 위험한 것이거든요. 이러한 기질을 타고나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편식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롭고 낯선 음식'도 변화로 간주하고, 그 새로운 맛을 즐기기보다는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잠자는 곳이나, 돌봐주시는 분이 바뀌어도, 어린이집이 바뀌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바뀌어도 한동안 매우 힘들어하는데, 이러한 변화 자체를 매우 무섭고 겁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어린이집을 바꾸거나, 장난감을 바꾸거나, 돌봐주시는 분들이 바뀌는 것 자체가 매우 스트레스입니다.
◇ 변화를 최소화시켜주는 것
따라서 이런 변화들이 꼭 필요하지 않으면, 최소화시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쉽게 불안을 느끼게 되어, 일이나 공부, 주어진 과제들을 해나갈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꼼꼼하게 해나가고, 잠재적인 위협을 잘 탐지하여 실수를 좀처럼 하지 않는 장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과도하게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불안에 압도되어 꼼짝도 못 하게 되거나, 피하려는 모습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에게는 불필요한 농담이나 자극은 주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 3~5세 무서움이 많아지는 시기
아이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로는 외부 세상을 살피고, 발달하는 특정 단계에서 느끼게 되는 발달상의 두려움이 있고,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형성되는 두려움은 아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로 없어지기도 합니다. 연령대마다 다르기는 합니다만, 아동 전기(3∼5세)에는 유아기나 아동 후기(6세∼사춘기 전)보다 무서워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인지 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상상력도 풍부해지면서, 앞으로 일어날 잠정적인 위험까지 예상하여 무서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어두운 것과 귀신이나 괴물 등이 두려움의 목록에 포함되게 되는데,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실과 상상을 완전하게 구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책에 속에서 본 괴물이나 도깨비가 실제로 존재하는 그것만큼이나 무서운 대상이 됩니다.
또, 이 시기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통해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규칙을 배우는 시기이기도 해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가운데 잘하고 못하는 아이들 나름의 기준이 생기게 되어, 성공과 실패에 따른 두려움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난 못해', '하기 싫어' 등과 같은 표현과 함께 울거나 변덕을 부리는 것으로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규칙을 어겼을 경우, 나쁜 짓이라고 알려준 행동을 하게 됐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 커지기도 하고 병원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아이라면 병원에 대한 공포가 생기기도 합니다.
◇ 두려움, 불안감 필요한 감정
그러면, 이런 두려움은 꼭 나쁘기만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며,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가지 심리적 기능이나 감정들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쓸모가 있으면, 계속 유지됩니다. 불안감도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는 감정이니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불안감은 어떤 때 쓸모가 있을까요? 불안의 가장 큰 장점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잠재적인 위협들을 대비하도록 하고, 준비하게 하며, 지속해서 대처하려고 노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두려움이 없으면, 어른들의 말이나 사회규칙, 법을 안 지키게 되고, 시험공부를 안 해서 오게 되는 불이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공부를 안 하게 됩니다. 반면, 두려움이 너무 많으면 지나치게 융통성이 부족하거나, 너무 불안한 나머지,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정작 시험 볼 때 불안해서 시험을 망치게 되기도 합니다.
*칼럼니스트 한근영은 한국 몰입 연구소/로샤 코리아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가이던스에서 인성, 진로, 학습, 상담, 부모 교육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부모 상담과 부모 교육, 학습 상담을 주로 하며, 수원 지방 법원 진단전문가/전문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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